다운느낌

익숙하지 않은 단어,,'즐기다'

다우니77 2009. 5. 16. 10:37

'빨래다하고놀고지금빨래들은지금서울에가고있음'

'헬롱ㅋㅋ굿모닝들ㅋㅋ'

'엄마 아빠의별명이 곰탱이야^ㅁ^'

'전화하지말고그냥메세지콜보내엄마^^'

'지금오산대지나세마지나가고있음'

'나배가곱봐-_-'

'밤에밤운동하고오겠습니당^ㅁ^'

'^ㅁ^맘  마음알쥥~~'

 

지용이가 보낸 문자들입니다.

폰에 저장해 놓은 녀석의 문자를 보면서

'빨래들은 서울가고 있다...'거나 '배가 곱봐..''헬롱 굿모닝들...'이라니

뜻은 알겠으나 유머가 넘치는 건지 놀리는 건지 헷갈리는 녀석의 한글실력에

한심하기보다 웃음이 나옵니다.

 

지난 한 주는 녀석의 학교가 축제였습니다.

간간이 휴강도 있고 캠퍼스는 여기저기 음악소리와 각종 행사로

와글와글 활기에 넘쳤을 겁니다.

어제, 금요일 11에는 채플이었고 1시에는 마켓팅수업인데

녀석이 느지막한 1시에 문자를 보냈더군요.

'ㅗ             ㅇ

 오ㅏ ㅉ ㅏ  ㅜ  ㅈ ㅏ

   ㄹ      ㄱ  ㅅ        

즐거운하루되세요' 

라고.

놀란 마음에 후다닥 전화를 했더니 '아마 휴강일걸..'라는 애매태평한 대답.

이럴 때 엄마가 화를 내며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면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상황인지라 녀석의 뇌가 '왜~에?'하면서 발동을 걸지 않을터.

그럴 땐 혼란이 와서 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 하여,

버럭,,,하려는 마음을 꾸~욱! 누르며 마켓팅수업도 휴강인지 가보라고 재촉성 잔소리를 하고는

교내장애인지원센터로 연락하니 녀석의 말대로 휴강이더군요. 이런 민망한 일이 헤헤.

녀석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지요-_-!

 

늘 그렇습니다.

큰 일날 것도 없는데 조급해하고 닥달을 하고

그 와중에 녀석은 뭐가 뭔지도 모른채 허둥대고.

천천히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수도 없이 마음 먹습니다만

실상은 큰소리부터 낼 때가 더 맣습니다.

녀석이 앞뒤 분간을 못해서 일이 커질까봐 걱정되서...

 

저녁에 일 끝나고 돌아오면서

우연히 어떤 장애소년이 수영연습하는 것을 봤습니다.

운전하며 곁눈으로 슬쩍슬쩍 보느라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엄격하게 코치하는대로 아이가 따라하는 모습에서

우리 지용이에게 늘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확 와닿았습니다.

 

'즐기다'

즐기는 것. 일상을, 그냥 매 순간을. 인생을.

수영을 하는 아이와 그 엄마에게는 시합과 1등이라는 미래의 목표만 있어 보였습니다.

연습하는 바로 그 시간들도 지나가면 아이의 인생에서 사라질 순간들인데.

자유로이 움직여 수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느낌을 간직할 수 있을까..

나와 가족도 그렇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살아온 것에 만족하니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시절에 식민기와 전쟁을 겪고 우리나라가 곤궁하고 격변하는 시기에 청춘을 지내셨는데    

정말 일생이 편하셔서 그리 말씀하셨겠습니까. 

스스로 살아오신 것에 대해 미련이 없을 만큼 열심히 사셨다는 말씀이었을 겁니다. 

나도 어머니 나이가 되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지용이, 그리고 지인이와 남편이, 특히 내가

오지도 않은 미래에 이룰지 말지도 모르는 앞날의 목표에 온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어설픈대로 부족한대로

어찌보면 별나게 불편할 것도 없고 사실 가진 것이 더 많은 것에 감사하며

매일 매 순간을 받아들이면 이 다음 어머니 나이쯤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실수범벅이고 수업에도 기대 이하로 엉터리라 교수님과 친구들을 당황시키고 있겠지만

사람들 속에서 나름 자기 생각을 갖고 움직이고 달라지는 지용이를 보면서 감사합니다.

책보다 컴터 속에서 지식과 영감을 얻으려는 모습이 우리와 달라 탐탁지 않기는 해도  

자신의 작업에 뿌듯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신나하는 지인이가 대견합니다.

예전처럼 번듯하지 않은 사무실에서도 그닥 다르않은 성실함을 보이는 남편이 신기하구요.  

말하고 보니 어쩌면 '즐기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저 혼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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