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느낌

[한걸음일지-버스타기] "내가 왜 못해?"

다우니77 2004. 4. 25. 07:49

 

어제 한 건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집에 오는 방향으로 버스타고 제대로 오기!

뭔가 새로운 걸 할 때마다 녀석이 하는 말. "내가 왜 못해? 엄마는 그것도 몰랐어?"

 

어제 처음 간 곳에서 버스를 혼자 타고 왔습니다. 물~론 태워 주신 분이 기사아저씨께 송파구청 앞에서 내려주십사 부탁해 주시긴 했어도 그래도 신기합니다. 중학교 때 버스를 타고 다녔으나 어제는 처음 간 곳이었는데도 몇번을 타는지도 알고 있었고 혼자 갈 수 있다고 건방까지 떨었답니다^^

 

어제부터 토요일에는 방과후 교실로 학교에서 특수학급 친구들만 모여서 그림과 운동을 하고 오기로 했습니다. 특수학급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전체 애들을 반으로 나누어 월요일엔 2-3학년을, 토요일엔 1학년을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퇴근도 않으시고 남으셔서 애들과 함께 계시는 선생님께 참 많이 감사합니다.

어제가 첫날이었는데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교회에서 요리와 공예를 하는 프로그램을 갔답니다. 처음 간 곳이어서 담당 집사님과 통화를 하고 끝난 후, 버스 태워주시면 정거장에서 기다리마고 얘기하고 마중 나갔습니다.

 

혹시나 싶어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몇 번 타고 오는 지 아니?'

'815번!'

'어디서 내릴건데?'

'아-참(짜증), 진주아파트지-'

'얌마- 거기서 올땐 송파구청에서 내려야지!'

'...(보입니다. 머쓱해서 머리 긁적이는 거^^) 알았다니깐-'

 

녀석이 정거장을 지나치면 버스를 쫒아가야하니까 집 앞인데도 차를 가지고 아빠랑 함께 나갔는데 마침 녀석이 탔을법한 버스가 오더군요. 차에서 그리 크지도 않은데 눈에 띄는 녀석이 내렸습니다. 워낙 잘났거든요 ㅎㅎㅎ.

 

아빠 엄마가 보고 있을 줄은 까맣게 모르고 한 손엔 카세트를 들고 이어폰을 꼽고는 흥얼거리며 걷기 시작, 석촌호수에 산책하러 다니느라 익숙한 길이어선지 망설임 없이 집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어디로 가는 지 아느냐고 했더니,

"내가 왜 못해? 엄마는 그것도 몰라?"

...나도 늘~ 잘~ 알.고.있.고. 싶다, 요 녀석아..

 

천천히 뒤따르면서 어느 건널목으로 건너는지 건널 때 좌우를 잘 보는지, 유심히 지켜보니 잘 하더군요. 근데 사람들 있는 곳에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대로 폼을 재면서 걷고 사람들이 없다싶으면 음악에 맟춰 어깨를 들썩이며 걷더라구요^^ 즐거워 보였습니다. 자기도 남과 다름없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이고. 같은 표정이 흐뭇해서 입이 귀에 걸린 아빠의 옆얼굴에도 묻어납니다.

 

그렇게 걸으니 어찌나 느리던지, 같이 길을 건넌 아줌마가 아파트 마당에 들어서고도 한참 지난 후 녀석의 모습이 백미러에 잡혔습니다. 집에 다 왔다 싶었는지 이젠 아주 앞발, 뒷발에 어깨춤까지 본격적으로 추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겁니다 ㄲㄲㄲㄲㄲㄲ- 가관이었죠^^

 

녀석은 선물입니다. 간간이 안스럽기도 합니다만, 한걸음씩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 자주 합니다. 녀석은 풀러보는 재미에 끝없이 웃음짓게 하는 선물꾸러미입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OST - Moonlit sea of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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