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느낌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예전에 쓴 글을 다시보며^^!

다우니77 2003. 12. 20. 10:55

지난 가을, 장애인신문에 썼던 글을 다시 보며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봅니다.
글은 당장에 부딪히는 순간 느끼는 치열함이 걸러진 후 쓰게 되어선지 종종 알맹이가 빠지거나 현실에서 빗껴나곤 합니다.

솔직히 '서두르지 않기'는 성마르게 재촉을 해봐야 별 뽀족한 수가 없더라는 현실적인 깨달음 끝에 차분해 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것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이해하면서 헤아려 보자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계산에서 나온 "자신을 향한 다짐" 같은 것이지요.

9월에 장애인신문의 <다운증후군을 알릴 글>을 부탁 받고 나름대로 다운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기●
(장애인 신문 / 9월 8일 / 더불어 논단)



다운인은 누구일까

다운은 21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발생하며 그 명칭은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처음으로 밝힌 영국인 의사 존 랭 다운의 이름에서 연유했습니다. 지능이 지체되고 공통적인 신체적 특징을 지니며, 행동과 기호까지도 서로 닮은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인종을 신체적 기질적 특징으로 구분하는 것이라면 다운인은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에 이은 제4의 인종일지도 모릅니다.

염색체 이상에서 기인하는 몇가지 질병에 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능발달이 현저하게 더뎌서 지적장애를 갖는다는 공통점과 통계적으로 심장병이 그 중 많더라는 점을 제외하고 한 아이가 모든 병을 몰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집은 작은 아이가 다운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심장이 이상하다는 말에 놀라고 다운이라는 말에 더욱 놀라고. 녀석과의 만남은 그렇게 제 누나보다 훨씬 요란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다운이라는 특징을 지닌, 그냥 더디고 몹시 어설프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서 종종 그 표현의 신선함으로 주변을 웃게 만드는 155cm, 55kg의 중학교 3학년인 건강한 대한의 청소년입니다.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불리하거나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행동에 미숙하고, 말과 사고력이 어설픈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구별짓습니다. 사실, 큰 소리로 얘기하질 않아서 그렇지 저를 포함해서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범주에 드는 사람은 많습니다. 아무튼 그런 기준에 의하여 '장애인'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아이 역시 핸디캡을 지니고 있으나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자의식이 강한 면에서는 보통의 사춘기 소년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사물의 본질만 꼭집어 보기도 하고 기억과 느낌에 정직해서 소위 멀쩡한 엄마가 얼렁뚱땅 넘어가려 할 때마다 지난 번 약속이 어땠는지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무ㅡㄹ론 엉뚱한 기억으로 주변을 혼란시킬 때도 있기는 하지요. 아무러나 장애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죄 지을 일 없는 맑은 사람들입니다.



타고난 솜씨^^


다운인은 대체로 노래를 좋아합니다만, 아쉽게도 장르불문, 음정불안, 엇박자, 주변무시 등 음치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도 동네 노래자랑에 가족이 함께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고 시계를 타 온 적도 있습니다만,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면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땡-'일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즐겁고 주변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노래이므로 노래를 즐기는 다운인들은 분명 축복받을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춤을 즐깁니다. 자진모리 휘모리를 정확하게 구분할 줄 몰라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흥겹게 추듯이 다운인들은 어떤 음악이든 적절히 표현하는 타고난 춤꾼입니다.

지난 7월의 다운복지관 개관식에서도 재즈댄싱 발표를 코 앞에 두고도 엉성하기 그지없어 공연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만 정작 무대에 오르자 모두들 신들린 듯 좁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관중석을 압도하더군요.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다운 아이들이 조금 더 체력을 키우고 끈기 있게 노력한다면,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세밀한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백댄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물놀이나 합주 등 악기를 다루거나 발레, 스키, 수영 등 운동 및 연극에서도 능력을 발휘합니다.



학교생활

인지능력은 떨어지더군요.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하거나 의사소통, 기계작동법, 길을 익히는 등 생활지수는 꽤 있는 편인데 인지학습에 필요한 지능은 확연히 떨어집니다.

공부를 따라가지 못할거라는 것 때문에 작은 아이 역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일 벌어질 교실에서 아이가 스트레스만 왕창 받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입학하기도 전에 모든 일을 상상하면서 쓸데 없는 걱정을 너무 미리 했다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납니다. 장애가 있든 아니든 아이들에게는 집 밖의 모든 상황이 다 공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는 산수나 국어만이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을 연습하는 공식 연습장이더라구요. 화장실 가고 교실에 앉아있고 급식시간에 식판을 잘 들고 다니고 줄서고 이동 수업을 따라가고 소리지르거나 남을 건드리면 안되고, 차를 피해야 하고 도움을 청하고 좋고 싫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법까지. 많은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학습보다는 집에서 집 밖에서 부모와 선생님이 알려줄 수 없는 또래의 행동양식과 상황에 맞는 대응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우에 따라서 특수학교도 있어야하겠지만 다양성을 서로 배운다는 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 집 아이는 1학년 담임 선생님 덕에 글자공부를 시작, 5학년이 되어서야 그럭저럭 읽고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4학년 이후, 워낙 특수학급엘 안가려 드는 녀석을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특수학급 교재를 가져다 따로 하게 하거나 모둠발표 등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도록 배려하시는 가운데 자신도 남들처럼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학은 지금도 한자리 더하기 수준이고 '105'라는 수를 '십오'라고 읽어버립니다.

다운인들이 모두 우리 애 같지는 않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학습은 무난하게 따라가는 아이들도 많고 수리영역보다는 언어영역이 더 낫다고 보여지며, 영어 역시 수학보다는 재미있어 합니다.

작은 아이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쓸 때, 종종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지난 겨울부터 쓰기 시작한 '갈매기의 꿈'을 반년만인 여름에 끝내면서 하는 말이 '조나단이 날개를 크게 만들어서 높이 날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주제를 정확히 집어낸 그 한마디에 모두 감탄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많은 도움을 받듯이 장애가 아닌 아이들도 친구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때로는 맞기도 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주고 받는 가운데 함께 클 겁니다. 현재,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중학교의 경우 지역마다 상당히 많으며 고등학교의 경우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각 지역 교육청에서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자세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자의식

다운인들은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많은 경우, 자라면서 경험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고집도 수그러 듭니다. 그러다가도 학교를 졸업한 후 대인관계와 외출이 줄면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행동과 언어가 어눌해 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봅니다.

비장애인도 사회활동이 줄어들면 마찬가지로 행동과 사고력 저하가 급격하게 올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인의 경우에는 학교를 졸업한 후의 진로가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작업장을 포함해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다운인이 고집이 있다는 것은 자의식이 강해서 일 수도 있고, 체력이 약한 아이들이 많으므로 힘들어서 짜증이 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수영이나 등산을 해서 체력도 키우고 스트레스도 풀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힘이 생기면 자신감도 생겨서 자연히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운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대인관계의 방법도 익히게 될 것이니까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다운인들은 본인을 장애인이라고 인식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알게되는 계기가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애자'라고 놀리는 말 속에서 막연하게 자신이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과 그 말이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놀리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모멸감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무엇인지도 알기도 전에 자신의 입장에 부끄러움을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친구들 처럼 공부나 축구도 잘하고 싶은데 안되니까 실망하고 실망이 거듭되면서 어렴풋이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은 비장애인들도 늘 겪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적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는 '난 왜 축구가 잘 안되지?'하다가도 금방 노래를 한다거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내고 웃음을 짓습니다. 비장애인들처럼 자기연민이나 좌절 같은 것으로 우울해 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자기표현에 비교적 적극적이면서도 불분명한 발음 때문에 오해도 잘 사는 다운인은 보통보다 2, 3배 느린 시계에 일상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디게 사는 다운인 아들과 살다보니 새로운 좌우명이 생겼습니다. '때가 되면 방법은 있게 마련이니, 서두르지 말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대한 일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나, 걱정했던 일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생각보다는 잘 지내온 만큼 이제는 걱정을 앞세우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현재에 충실하도록 할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15년 전과 비교하면 사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하여 많이 달라졌습니다. 앞으로 더욱 달라지겠지요.

변화가 빠른 나라이니까 복지분야의 변화도 빠를 것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