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느낌

지용이가 사라졌다 --*

다우니77 2003. 3. 15. 06:08

<올 줄 알았지->

지용일 잃어버렸습니다.
공들여 사람 다 만들어 놓고 잃어 버렸습니다.

지난 금요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 전화를 했더군요. 공연보러가자는 반가운 꼬임..안그래도 공짜에 약한 김정옥입니다. 당근 룰루랄라 서초동까지 갔지요. 근데, 집에서 전활 받아야할 녀석이 전활 안받는 겁니다. 미술학원갔다가 7시면 집에 와 있어야 합니다. 공연 시작 직전인 7시 30분까지 계속 전화를 하다가찜찜한 채, 휴대폰을 껐습니다.
워낙 유명한 무용단이었는지 커튼콜을 수도 없이 받더니 겨우 공연을 끝냈습니다. 평소엔 커튼콜을 즐기며 몇번 인사를 하나 세며 즐거워 했는데 그날은 관람하는 중에도 영 뒷골이 땡기더라구요--;; 끝나기 무섭게 후딱 밖으로 나와 전화부터 후다닥 했습니다만...안받더군요.

서둘러 택시를 잡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려 그런지 그동네가 워낙 그런지 암튼 택시가 없는겁니다. 그러는 사이 뒤늦게 지인이가 전화를 받더니 "지용이가 없어졌어-. 학원차를 안탔대요"...쿵!!

9시 10분인데...비가 오는데..어디서--;;

아십니까. 그 심정...공들여 키운 녀석, 사람 다 만들어서 이게 뭔 일이람...게다가 에미가 놀고있는 새에. 헉--. 사회면 감입니다. 설상가상 휴대폰 밧데리까지 떨어지더군요..

선생님 말씀이 아이가 집에 간다고 나간 것이 6시 40분, 없어진 것을 안 것이 7시 30분, 엄마에게 연락하다 안되서 퇴근하셨다는 얘기니, 이미 어딘가 엉뚱한 곳으로 갔거나 비를 피해 어디 골목이나 건물 옆에 있거나...

학원이 차를 타고도 15분은 너끈이 걸리는 거린데..걸어온다고 해도 9시면 집에 왔어야 하는데...걸어 온 적이 한.번.도 없는데...길을 알아도 어두워서 낯설고 당황했을텐데...2시간 반이나 지났는데...

선생님께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하시라하곤 지인이에게 집앞으로 밧데리 들고 나오라고 연락하고, 그 시간에도 퇴근않은 아빠에게 빨리 학원근처 파출소로 가라고 전화하면서도 그 30여분 사이에 오만 생각이 다 들면서도. 신기한 것은 못찾을 거 같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분명 전화할 수 있으면, 누가 '너 왜그러니'물어보면 반드시 전활 할거라고 믿었습니다.

결론이 궁금하시죠.
찾았습니다. 10시에!! 파출소로 골목으로 거꾸로 아이가 다니는 길을 되집어 학원까지 가니 그곳에!! 녀석이 있었습니다. 평소엔 우산을 잘 안쓰는 녀석이 그날은 우산도 갖고 있었고 머리 젖을까봐 모자도 쓰고 오리털 파카까지 챙겨입고. 3시간을 바깥에서 떨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짜식.

학원끝나고 밖에 나오니 학원버스가 없더랍니다. 버스 다니는 길로 가면 버스를 탈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큰길로 나가서 중앙벙원까지 걸어갔는데 길이 없어 다시 학원까지 되돌아 오니 문이 잠겨있더랍니다.
풍납동 뒷길을 계속 걸어 잠실 쪽으로 가다보면 중앙병원 옆, 올림픽대교 아래부터 인도가 끊어져 있습니다. 학원에서 그곳까지 어설피 걸으면 왕복 1시간 걸립니다.


지용인 우릴 보더니
잠시 눈물이 글썽하곤 금새 "올 줄 알았지-"
기다리면서 길고 긴 시간동안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까요. 속상하고 무서웠을까요...

엄마가 올 거라고. 학원 문은 닫혔어도 엄마가 저를 데리러 올거라고 추호도 의심없이 믿고 서있었을 녀석. 비는 계속 추적추적하는데 배는 고파오는데 좀체로 오지 않는 엄마...얼마나 야속했을까요..

엄마가 공연본다고 놀러가지만 않았어도 녀석을 그렇게 오래 고생시키진 않았을텐데 미안하고 속상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 근거없이 그리고 신기하게도 잃어버리지는 않을거라고 믿기는 했습니다. 전화를 잘 하는 녀석이니까요. 다만 추운데 비를 맞으며 당황했을 얼굴이 눈에 선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난 번 학교 가다 버스를 잘 못 타서 미사리까지 갔다 온 날, 잔뜩 교육시키긴 했습니다. 길을 잃어 버렸으면 가게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전화 좀 해 주세요"부탁하라고. 그러나 길 잃어버리는게 늘 있는 일도 아니고 가게란 곳을 만만히 들어갈만큼 넉살 좋은 놈도 아닌게 탈입니다.

집에 오면서 아빠가 이번에도 역시 '아빠식'으로 가르치더군요.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서 '엄마한테 전화해 주세요'하고는 배고프니까 맛있는거 먹으면서 기다려"

미사리사건 때, 그 때 휴대폰을 사줬어야 했습니다. 휴대폰 뺏으려고 혹 누가 때릴까봐 뺏앗으려는 놈에겐 맞지말고 그냥 뺏기면 되는데 괜히 맞서다가 크게 다칠까봐 못사줬는데 이번엔 필히 사줘야겠습니다. 밧데리 떨어지면 그거야 말로 무용지물이 되더라도 그래도 사줄 겁니다.

중3인데, 이젠 사 줄 때도 됐습니다.휴대폰은 애한테 더 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인지교육보다 생활경험이 살아가는 데는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름과 전화를 분명하게 말하거나 써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요즘은 길에서 보기도 사실 어렵지만 공중전화 거는 법, 버스타기, 거리표시 읽고 집 찾아오기, 그리고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이나 가게 등에 도움청하는 방법 등.

그래도 너무너무 신퉁합니다. 다시 그 밤에 인적도 없고 깜깜한 길을 되돌아 학원을 찾아갔다는 것이~.
역~시 잘난 놈입니다^^

밤늦도록 함께 아이를 찾느라 애쓰고 놀라셨을 홍승욱 원장님과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 일로 지용이가 전보다 한뼘쯤 약아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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