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느낌
세상하고 화해하기 (받아들이기)
다우니77
2002. 10. 5. 21:47
다음은 99년 경, 지용이가 초등학생일 때, 다운 홈(www.down.or.kr)에 띄웠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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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저를 '장애아의 엄마'로, 녀석을 '장애아'로 불렀습니다. 저는 그 시선이 의아했고 못마땅했고, 한없이 약했습니다.
녀석이 태어나고 한참을 그랬습니다.
주변이 아는 것도 꺼렸고 우리 아이만 '남다르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모임도 여행도 어디든 데리고 다니면서 '그래, 어쩔래!'하는 식으로 오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들'을 만나면서, 즉, 제 발로 걸어다니기 시작하고, 학교에 가고, 말을 하고, 그래서 아이를 통해 그들과 부딪치면서, 그 부딪침이 심해지면서, 이제껏 '그들'에게 느껴왔던 불편이 모양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과의 화해'의 시작이었습니다.
잠깐 사이 깜쪽 같이 사라진 녀석 때문에 당황하는 저에게 좀 남다르게 생긴 덕에, 동네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녀석이 놀고있는 놀이터를 가르쳐주었고, 아무것도 못하리라 여겼던 녀석이 더디지만 조금씩 커가는 모습에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많이 컷어요'하며 말을 걸어 오는 이웃들이 있었고, 녀석에게 '어디 가냐?','이단 옆차기 해봐라','멋있는 모자구나',
'롤러스케이트 연습하니?'하는 말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학교 앞에서 머뭇거리는 녀석을 보고 '5학년 되더니 학교도 잘 가는구나' 북돋아 주고,
간혹 녀석을 두들겨 놓는 그야말로 '녀석'과 '그런 녀석'들을 혼내주는 '정의의 우리편'도 있고, 맞아 싼 짓을 '우리 집 녀석'이 하기도 하고, 그런 저런 일들을 내게 미주알 고주알 재미있어하며 다 얘기 해 주는 안테나 같은 이웃과 동네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지하고 정직하고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이나 동물들에게 보여주는 녀석의 따스함에 탄복하곤 했습니다. (고백합니다만,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저보다 작은 아이를 밀거나 시끄럽게 우는 아기에게는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해서 무척 당황시키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빗물이나 나무, 집 지키는 강아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무엇과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녀석의 심성에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녀석을 도와주고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 하기도 하며 동시를 곧잘 외우는 녀석 때문에 꾀 부리던 친구들이 '야! 너도 노력 좀 해라' 퉁박을 받기도 한답니다.
더 이상 '그들'로만 보이지 않더군요. 혼자 고군분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주위의 도움을 늘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이를 통해 세상의 이런 저런 맛을 두루 본 것입니다.
불편했고 바빴고 신경을 더 써야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들어오려고 애쓰며 길을 만든 것은, 갑옷을 둘러치고 세상과는 담을 쌓으려 한 제가 아니라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녀석은 나름대로 재주껏 주변과 어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세상과 엄마, 아빠를 화해시키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아이를 '장애아'라고 구분하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흔히 겪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서툴어서 그럴 뿐이니까요.
언젠가는 그저 적응 속도가 느릴 뿐인 우리 아이들에게 익숙해질 겁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거든요.
이제는 저처럼 미련하게 마음 고생하지 마시고, 아이의 '장애=남다름'을 사람들에게, 친지와 친구에게 어떻게 얘기하나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가벼이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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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저를 '장애아의 엄마'로, 녀석을 '장애아'로 불렀습니다. 저는 그 시선이 의아했고 못마땅했고, 한없이 약했습니다.
녀석이 태어나고 한참을 그랬습니다.
주변이 아는 것도 꺼렸고 우리 아이만 '남다르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못해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모임도 여행도 어디든 데리고 다니면서 '그래, 어쩔래!'하는 식으로 오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들'을 만나면서, 즉, 제 발로 걸어다니기 시작하고, 학교에 가고, 말을 하고, 그래서 아이를 통해 그들과 부딪치면서, 그 부딪침이 심해지면서, 이제껏 '그들'에게 느껴왔던 불편이 모양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과의 화해'의 시작이었습니다.
잠깐 사이 깜쪽 같이 사라진 녀석 때문에 당황하는 저에게 좀 남다르게 생긴 덕에, 동네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녀석이 놀고있는 놀이터를 가르쳐주었고, 아무것도 못하리라 여겼던 녀석이 더디지만 조금씩 커가는 모습에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많이 컷어요'하며 말을 걸어 오는 이웃들이 있었고, 녀석에게 '어디 가냐?','이단 옆차기 해봐라','멋있는 모자구나',
'롤러스케이트 연습하니?'하는 말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학교 앞에서 머뭇거리는 녀석을 보고 '5학년 되더니 학교도 잘 가는구나' 북돋아 주고,
간혹 녀석을 두들겨 놓는 그야말로 '녀석'과 '그런 녀석'들을 혼내주는 '정의의 우리편'도 있고, 맞아 싼 짓을 '우리 집 녀석'이 하기도 하고, 그런 저런 일들을 내게 미주알 고주알 재미있어하며 다 얘기 해 주는 안테나 같은 이웃과 동네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지하고 정직하고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이나 동물들에게 보여주는 녀석의 따스함에 탄복하곤 했습니다. (고백합니다만,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저보다 작은 아이를 밀거나 시끄럽게 우는 아기에게는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해서 무척 당황시키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빗물이나 나무, 집 지키는 강아지,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무엇과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녀석의 심성에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녀석을 도와주고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 하기도 하며 동시를 곧잘 외우는 녀석 때문에 꾀 부리던 친구들이 '야! 너도 노력 좀 해라' 퉁박을 받기도 한답니다.
더 이상 '그들'로만 보이지 않더군요. 혼자 고군분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주위의 도움을 늘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이를 통해 세상의 이런 저런 맛을 두루 본 것입니다.
불편했고 바빴고 신경을 더 써야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들어오려고 애쓰며 길을 만든 것은, 갑옷을 둘러치고 세상과는 담을 쌓으려 한 제가 아니라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녀석은 나름대로 재주껏 주변과 어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세상과 엄마, 아빠를 화해시키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아이를 '장애아'라고 구분하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흔히 겪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서툴어서 그럴 뿐이니까요.
언젠가는 그저 적응 속도가 느릴 뿐인 우리 아이들에게 익숙해질 겁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거든요.
이제는 저처럼 미련하게 마음 고생하지 마시고, 아이의 '장애=남다름'을 사람들에게, 친지와 친구에게 어떻게 얘기하나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가벼이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니까요.